“숨만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제주 해녀들의 이 한마디엔 깊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차가운 바다 속을 산소통 없이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들. 그 놀라운 잠수 능력은 단순한 훈련의 결과일까요? 최근 국제 연구진이 발표한 Cell Reports 논문은 이 전통적 직업군이 보여주는 유전적 적응과 생리적 반응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며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제주 해녀, 전통을 넘은 생물학적 미스터리
해녀들은 심지어 임신 중에도 10m 바닷속까지 들어가 1분 넘게 숨을 참습니다. 이 놀라운 능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죠. 이번 연구는 **“이 능력, 단지 훈련 덕분만은 아닐 수 있다”**는 의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유전자 안에 숨겨진 해녀의 비밀
연구팀은 제주 해녀 30명, 제주 일반 여성 30명, 한반도 본토 여성 31명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제주 여성들에게서만 발견된 두 가지 유전 변이가 밝혀졌습니다.
- 첫 번째는 추위에 잘 견디게 해주는 변이.
- 두 번째는 혈압, 특히 이완기 혈압을 낮추는 변이입니다.
이 변이는 혈관의 염증 반응을 억제해, 잠수 중 혈압 상승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몸이 더 편안하게 잠수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유전자인 셈이죠.
제주 사람들, 본토와 유전적으로 다르다?
놀랍게도 이 혈압 조절 유전자는 **제주 여성의 33%**가 가지고 있는 반면, 본토 여성은 **7%**만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4~5배 차이 나는 수치죠. 연구진은 이를 자연선택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해녀로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졌기 때문”
이러한 유전적 적응은 약 1200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제주 해녀뿐 아니라 제주 주민 전체로 퍼져 있는 특징입니다. 즉, 해녀 활동을 하지 않아도 제주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잠수 체질’일 수 있다는 것!
훈련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적응: 서맥 반응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그는 ‘모의 잠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모든 참가자의 심박수가 감소했지만, 해녀들의 심박수는 평균 18.8회 줄어든 반면, 일반 여성은 12.6회만 줄었습니다.
심박수가 느려지는 서맥(徐脈) 반응은 산소 소비를 줄이고 오래 숨을 참게 도와줍니다. 이 반응은 유전적 요인보다는 오랜 훈련에 의한 생리적 적응으로 해석됐습니다.
이 연구가 현대 의학에 던지는 힌트
이 유전자는 단순히 잠수를 돕는 것을 넘어 현대 질환 치료에도 응용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임신중독증, 뇌졸중과 같은 고혈압성 질환에 대해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이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 변화가 정확히 밝혀진다면, 이를 모방한 신약 개발도 가능하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제주도는 뇌졸중 사망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죠.
마무리: 전통과 과학이 만날 때
제주 해녀는 단지 오래된 직업이 아닙니다. 인간의 환경 적응이 어떻게 유전자와 생리에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일깨워줍니다.
“사람의 몸은, 환경에 맞춰 진화할 수 있다.”
그 진화의 흔적이 오늘날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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